만드는 일



    이제는 단골이 되어버린 사무실 근처 미용실. 그곳에 처음 간 날, 무슨 일을 하시냐는 질문(무슨 일을 하길래 이렇게 평일 대낮에 슬리퍼를 끌고 예약도 없이 나타난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짧게 “건축일 합니다.”라고 대답하자, “아, 건물 짓는 거요? 공사를 하시는 거에요, 아니면 그림을 그리시는 거에요?” 라는 되물음이 돌아왔다. 머릿속으론 건물을 짓는 과정에 필요한 무수히 많은 단계와 각종 전문 분야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멋쩍어 그냥 설계만 한다고 건성으로 얼버무렸다. 어엿이 D라운지 공사를 마친 지금, 이제는 “네, 공사도 하고 그림도 그립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첫 직영 공사의 경험은 2018년 여름. 정말 끔찍하게 더웠던 여의도 한강 공원에 한 달간 설치했던 파빌리온 프로젝트였다. 첫차로 출근해 떠오르는 해를 보며 말뚝도 박고, 자재도 나르고, 쓰레기도 줍다가 열두 시간 뒤에 모든 작업자가 떠나는 걸 확인하고 지하철에 땀을 뚝뚝 떨어트리며 귀가 후 건축사 시험공부를 하는, 그런 일과로 채워진 나날이었다. 
    
    나와 동갑내기였던 발주처 담당자는 어찌나 기준이 높고 까다로운지, 정말 쥐어짠다는 말이 딱 들어맞게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출력을 내게끔 만들고는 가볍게 오 좋은데요,라는 말만 남기는, 그래서 또 그 말이 듣고 싶어서 이 악물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사람에게서 불쑥 연락이 온 것이 그로부터 7년 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이다. 지인에게서 어떤 부탁을 받았는데, 그 부탁을 다시 부탁할만한 사람이 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는 연락이었다. 기간을 제외한 모든 조건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부연 설명을 들으며, 나는 그 옛날 한강공원의 뙤약볕을 떠올렸다. 그가 악조건 앞에서 날 다시 찾은 게 납득이 갔다. 

    7년 전 기억 하나로 날 찾아온 그도 무모했지만, 7년 전의 경험만 믿고 덥석, 함 해 보입시더라며 응한 나도 무모했다. 그동안 주변 지인들을 위한 자잘한 직영 공사는 몇 번 해보긴 했으나, 이렇게 발주처에게 설계안과 시공 결과를 동시에 평가받아야 하는 프로젝트는 없었다. 그는 어차피 악조건인 거 서로 다 아니까, 결과물이 조금 아쉽게 나와도 괜찮다며 다독였다. 당신 그런 사람 아닌 건 7년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무언가 가치 있는 인식을 남길 수 있는지 고민합니다.’ 
  공사가 시작될 무렵 진행했던 한 잡지의 인터뷰에서,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실 ‘인식을 남긴다’는 말은 다른 이를 향한게 아니라 나를 향해 있었다. 손엔 전동 드릴과 망치가 쥐어져 있었고, 한 쪽 주머니엔 반대쪽 주머니의 돈까지 갉아 먹을 것만 같은 빠듯한 예산이 있는 나. 그는 이미 건축가라기보다 작업자, 아니 사업자가 되어 있었다. 더 정확히는 이윤을 못 남길 위기에 놓인 초조한 사업자였다.
   
   모든 결정과 판단이 숫자를 통해 이뤄지는 감각. (물론 설계 과정에서의 경우도 비슷하지만) 예상과 어긋나는 하루가, 한 시간이, 바로 금액과 숫자로 환원되는 생생한 감각. 그 감각의 외줄 위에서 엉금엉금 나아가려니, 이 방향으로 가다가 추락하진 않을지 얼음판에 돌멩이 던지는 심정으로 없는 돈을 털어서라도 실물의 무언가를 만져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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