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과업서 상 용역 기간은 세 달 남짓. 계약하고 측량하는 데만 2주가 지나갔다. 6주 차에는 ‘중간 점검’이라는 이름의 회의가 잡혀 있었는데, 기본 설계를 다 완료한 상태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자리였다. 나는 화장실 변기 개수라도 고치려 들면 전부 뒤집어 엎을 생각으로 회의에 들어갔다.

  카페테리아가 필요하니 마니, 숙소가 있어야 하니 마니 너절한 도돌이표 같은 갑론을박에 결론 없이 회의가 끝났다. 지쳐 자리에 앉아 황망해하고 있는데, 본청 사무관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건축사님, 오늘 내용 개의치 마시고 설계 진행하세요. 올해 안에 납품하셔야 해요. 그래야 용역비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내년이면 사라지는 돈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분기마다 멀쩡한 보도블록 뜯어내듯 설계를 하고 있는 건가. 갈피를 못 잡고 당황해하는 나에게 그는 상황을 납득 할만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업, 금액이랑 연면적이 그렇게 된 이유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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