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침서에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던 ‘인공암벽장 예정지’, ‘인공암벽장 연계 동선 고려’ 이게 힌트였다. 사업은 애초 두 개가 한 세트였지만 별도의 공모가 필요없는 인공암벽장을 미루고, 학교 예산부터 먼저 소진하기 위해 무리한 조건으로 공모가 급하게 진행된 것이었다.

   정상적인 예산이 다음 해 추경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예정’이라는 상태를 지침에 명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이상한 조건으로 공고된 거라는 설명이었다. 회의 때마다 다 줄이고 다 삭제 하겠다고 윽박지르던 젊은 건축가를 묵묵히 지켜보던 그의 심경이, 추경이 확정된 연말이 다가와서야 속 시원히 사정을 알려줄 수 있었던 그의 심경이 문득 궁금하다.

   몇 주 뒤, 나는 수정을 염두에 둔 도서를 우선 납품했고 다음 해 추경과 동시에 증액된 설계비로 재계약을 체결하며, 인공암벽장을 포함한 다음 설계 단계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한편 아무것도 모른 채 연말을 맞아 싱글벙글 한번에 수령한 용역비는, 몇 달 뒤 종소세 폭탄이 되어 돌아와 수입 지출 관리의 중요성을 눈물로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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