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X    내 부족함을 주변 풍광에 기대어 숨겨볼까 하는 얄팍한 바람이 있었음을, 산이 워낙 좋고, 나무가 워낙 울창하고, 하늘이 워낙 시원하다는 걸 이용해서 나의 어설픈 선택들이 그럴듯하게 묻히길 바란 게으름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설계의도구현 업무가 시작되고 나서는 그 기대가 더 자주 고개를 들었지만, 나의 설계의도는 내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만 구현되어 갔다. 점점 현장이 날 찾는 일이 줄어들면서 주고 받던 마음의 거리와 관심도 조금씩 조금씩 멀어졌다.

   어느 날 외장재 색상을 추천해달라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몇 가지 샘플을 놓고 고민 중이라고 했다. 내가 지정했던 자재는 없었지만 보내온 사진을 몇 번이나 확대해보고, 주변의 톤을 떠올리며 비교적 어두운 색을 하나 골라 보냈다. 튀지 않고, 배경에 차분히 가라앉는 색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잠시 뒤, 답장이 왔다.

  “너무 어두운 것 같아서 밝은 색으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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